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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실무관 리뷰(공공기관, 하위직, 갈등 구조)

by papa1000 2026. 1. 4.

무도실무관 영화 포스터
무도실무관 영화 포스터

2024년 개봉한 한국 영화 무도실무관은 공공기관이라는 안정된 틀 안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차별과 갈등, 그리고 ‘하위직 실무자’라는 이름 아래 존재가 투명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실감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무기계약직 공무원인 ‘무도실무관’ 김영숙의 시선을 따라가며, 공공기관 내부의 위계 구조, 무시받는 실무자들, 책임 회피의 조직 문화 등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현실적인 이야기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더해져 관객들로부터 높은 공감과 울림을 이끌어냈다. 이 글에서는 무도실무관의 줄거리를 중심으로, 영화가 담고 있는 공공기관 시스템, 하위직의 역할, 구조적 갈등을 깊이 있게 해설한다.

공공기관 : ‘안정’의 이면에 숨겨진 구조적 모순

무도실무관은 주인공 김영숙이 지방 시청 복지과의 무도실무관으로 발령받으면서 시작된다. 흔히 공공기관은 안정된 직장으로 인식되지만, 영화는 그 ‘안정’이란 말이 얼마나 표면적이고 이면에선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지를 드러낸다. 김영숙의 하루는 민원인의 불만과 서류더미 속에서 시작된다. 민원을 접수하고 처리하며, 사무실 정리와 회의 준비, 동료 업무 지원까지 도맡아 하지만 그녀는 ‘정규직 공무원’이 아닌 ‘무기계약직 실무자’라는 이유로 회의 발언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공공기관이라는 공간은 효율과 협력보다는 위계와 구분이 뚜렷한 조직으로 그려진다. 실무자가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정책 결정권은 오로지 정규직 공무원에게만 있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부드러운 일상처럼 보여주지만, 그 안에는 김영숙의 피로감과 소외감이 서서히 쌓여간다. 특히 동료 직원들과의 사소한 대화 속에서 반복되는 ‘정규직과의 차이’는 김영숙이 철저히 구조 밖의 존재임을 암시한다. 공공기관이 결코 모두에게 ‘공정’ 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이 장면들을 통해 강하게 전달된다.

하위직 : 무기계약직 실무자의 투명한 존재감

김영숙의 직함인 ‘무도실무관’은 표면적으로는 ‘행정 보조’지만, 실질적으로는 창구 민원, 전화 응대, 전산 입력, 민감 민원 처리까지 맡는 핵심 역할이다. 하지만 그녀가 소속된 위치는 ‘하위직’,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동료나 상사, 심지어 민원인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다. 특히 영화는 동료 팀장이 김영숙에게 “회의 안 들어와도 돼요. 그건 공무원 회의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 차별을 명확히 드러낸다. ‘하위직’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직급이 아니라, 영화 내에서 김영숙의 존재를 규정하는 기준이 된다. 같은 공간에서 일해도, 같은 민원을 접해도 그녀는 책임은 지되 권한은 없는 위치에 놓인다. 이로 인해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마저 자존감과 직결된다. 그녀가 민원인의 무례한 말에 침묵하는 장면,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묵묵히 따르는 모습은 수많은 실무자가 겪는 현실을 투영한다. 또한 영화는 하위직 실무자의 감정노동을 강조한다. 김영숙은 시청 복지과의 최전선에서 민원을 응대하며, 눈물을 쏟는 어르신부터 고함을 지르는 시민까지 감정을 흡수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스트레스와 피로는 그녀 혼자 짊어지고, 조직은 ‘실무관은 감정 관리도 일의 일부’라는 식으로 방치한다. 영화는 이 지점을 통해 하위직이 단순히 직급이 아닌, 권력 없는 노동자임을 고발한다.

갈등 구조 : 책임은 실무자에게, 보호는 조직에

영화의 전환점은 한 고령 민원인의 사망 사건이다. 복지 지원을 요청하던 이 민원인이 갑작스레 사망하고, 그 과정에서 행정 누락과 책임 소재 문제가 불거진다. 김영숙은 해당 민원을 담당했지만, 처리 지연은 정규직 담당자의 결재 지연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건 직후 책임은 그녀에게 전가되며, 무도실무관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된다. 무도실무관은 이 장면을 통해 조직 내부의 갈등 구조를 정밀하게 보여준다. 시스템은 위계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실수나 문제가 생기면 가장 낮은 직위에 책임을 돌리는 문화가 암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규직은 보호되고, 하위직은 소모된다. 팀장은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라고 말하며, 김영숙에게 조용히 사직서를 내라는 암시까지 건넨다. 이러한 갈등 구조 속에서 김영숙은 내적 갈등을 겪는다. 계속 참고 일할 것인가, 부당함에 맞설 것인가.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기를 되짚으며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를 자문한다. 영화는 이 질문을 중심으로,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립이 아닌 구조적 책임의 문제를 탐구한다. 그리고 김영숙은 조직 내부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버티는 것’도 하나의 저항임을 보여준다. 그녀는 사직하지 않고 다시 민원창구로 돌아가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인정하는 선택을 한다.

무도실무관은 대한민국 공공기관 안에서 하위직 실무자가 처한 현실을 생생히 묘사한 영화로, 단순한 직장 영화가 아닌 구조적 문제를 조명하는 사회 드라마다. 공공기관의 겉보기 ‘안정’ 이면에 있는 불합리한 위계, 무기계약직의 투명한 존재감, 책임 회피의 조직 문화까지, 우리의 직장과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일하고 있는 수많은 김영숙들에게 이 영화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 무도실무관은 잔잔하지만 강한 답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