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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녀 실험체, 탈출, 기억

by papa1000 2025. 12. 30.

마녀 영화 포스터
마녀 영화 포스터

마녀는 2018년 개봉한 박훈정 감독의 초능력 액션 영화로, 실험체로 길러진 한 소녀가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 기억을 회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험체’, ‘탈출’, ‘기억’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영화의 전체 구조와 서사를 요약해본다.

실험체로 살아가는 아이들

영화 마녀의 서사는 실험체라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영화의 도입부는 한밤중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폐쇄적인 시설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학살 장면으로 문을 연다. 그곳은 ‘국가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인류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목적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조작 실험이 이루어지는 비밀 연구소였다. 이곳의 연구진은 아이들의 DNA를 조작하고, 신경계와 근육 반응을 극단적으로 증폭시켜 초인적인 존재로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이들을 병기화된 실험체로 키워냈다. 자윤은 그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높은 실험체로, 실험 성공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이들은 단순한 연구 결과물이 아닌, 철저히 통제되고 감시되는 전투용 생명체로 길러졌기 때문에 감정, 자율성, 삶의 의미 같은 인간적인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도 피를 묻히고 상대를 죽이는 데 주저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훈련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기계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자윤은 바로 그런 환경에서 자라났기에, 세상에 대한 감각은 매우 제한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자윤을 감정적 공감 능력을 가진 인물로 그린다. 이는 그녀가 실험체라는 기계적인 존재를 넘어서, ‘사람’으로 변화해가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임을 암시한다. 연구소 내부의 잔혹한 실험은 성공을 거듭했지만, 윤리적 붕괴와 피실험체들의 불안정한 상태는 결국 내부 붕괴로 이어지고, 자윤은 그 혼란 속에서 탈출한다. ‘실험체’ 자윤이라는 설정은 영화 전체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핵심 코드이며, 이 설정은 단순히 자윤의 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사회가 통제하려는 인간의 본성, 시스템이 원하는 효율성 속에 억눌린 자아의 폭발을 상징한다. 마녀는 실험체라는 존재를 통해 인간의 윤리, 과학의 오만, 그리고 정체성의 근원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탈출이 갖는 의미

마녀의 핵심 전개 중 하나는 자윤의 탈출이다. 이 탈출은 두 가지 층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물리적 탈출이다. 연구소 내부에서 벌어진 혼란 속에서 자윤은 피를 흘리며 숲으로 도망친다. 아직 어리고 상처 입은 자윤은 겨우 목숨을 부지해 도망쳤고, 외딴 시골 농가에 사는 노부부에게 구조된다. 이 부부는 자윤을 친딸처럼 키우며, 자윤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소녀처럼 살아간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웃고,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도저히 과거 실험체였던 자윤과는 연결되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탈출일 뿐이다. 두 번째 층위는 정신적, 존재론적 탈출이다. 자윤이 비밀 실험체로서의 정체를 버리고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살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가 과거를 잊고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려는 의지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방송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그녀의 얼굴이 알려지고, 과거 연구소에서 그녀를 알고 있던 이들이 그녀를 다시 찾아오기 시작하면서, 자윤이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과거는 다시 현재로 파고든다. 이 시점부터 자윤의 탈출은 점차 균열을 맞는다. 그녀는 실제로 탈출한 것이 아니라, 잠시 도망쳐 있었을 뿐이라는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영화는 자윤의 ‘평범한 삶’과 ‘실험체로서의 운명’이 충돌하는 구조를 통해 관객에게 인간의 자유의지와 환경의 지배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또한, 자윤이 더 이상 도망치는 것이 아닌, 스스로 과거와 마주하고 맞서 싸우기로 선택하는 순간, 탈출이라는 개념은 ‘도망’에서 ‘해방’으로 전환된다. 단순히 공간을 떠나는 것이 아닌, 자신을 옭아매는 정체성과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탈출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다.

떠오르는 기억 속 정체성

영화 초반, 자윤은 자신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로 보인다. 실험체였던 과거, 연구소의 존재,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등에 대해 전혀 모르는 듯 행동한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관객은 자윤의 말과 행동 사이에 미묘한 불일치가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녀는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놀라운 반사 신경과 신체 반응을 보이며, 때로는 상대의 의식을 조작하는 듯한 행동도 드러낸다. 이것이 단순한 자극 반응인지, 무의식에 남은 능력의 흔적인지 관객은 혼란에 빠지게 되며, 바로 이것이 영화가 의도한 ‘기억의 조작’이라는 서스펜스 장치이다. 결국, 자윤은 기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숨기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녀는 연구소에서 당한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을 찾아올 적들의 반응까지 예측하고 있었다. 기억을 잃은 척, 혼란스러운 피해자인 척하면서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유인해 낸 것이다. 이는 마녀가 단순한 능력자 영화가 아니라, 정체성과 기억의 관계를 다루는 심리극으로도 읽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데이터가 아니라, 자아의 구성 요소이며 삶을 이끌어가는 방향성과 행동의 이유가 된다. 자윤이 기억을 되찾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이유를 다시 자각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 온전히 되살아났을 때 그녀는 무력한 피해자에서 냉정하고 전략적인 전사로 변모한다. 영화 후반부의 피 튀기는 전투는 단순한 액션이 아니라, 기억을 회복한 존재가 자신을 만든 시스템에 반격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자윤이 기억을 되찾는 과정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서사적 장치다. 이 구조는 관객이 스스로 그녀의 말과 행동을 의심하게 만들며, 반전의 충격을 극대화한다. 또한, 그녀의 기억이 단지 과거 회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세계관을 확장할 열쇠가 된다는 점에서 속편을 위한 장치로도 완벽히 기능한다.

마녀는 주인공 자윤의 변화와 각성을 치밀하게 그려낸다. 단순한 초능력 액션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장르적 재미와 철학적 여운을 동시에 남긴다. 속편을 통해 더욱 넓어질 세계관이 기대되는 작품이다.